육아

[출산] 임신 39주차 유도분만 후기 (feat. 양수 터짐, 무통 주사, 자연 분만)

쉽게사는방법 2023. 1. 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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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임신 39주차 유도분만 후기 (feat. 양수 터짐, 무통 주사, 자연 분만)


안녕하세요.
드디어, 이윽고, 바야흐로 주니어가 태어났습니다. 짝짝짝
기록도 할겸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참고하실 수 있도록 분만 과정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의학적인 지식은 얕으므로 개인적인 경험담 정도로 이해하시고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1월 첫주 토요일, 38주 3일차, 자궁 1cm 확인

아기 몸무게는 3.1kg, 자궁 문은 1cm정도 열린 상태였습니다. 다음주 수요일에 한번 더 검사를 해보고 큰 변화가 없으면 금요일 즈음 유도분만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음주에 애가 나온다? 전혀 실감이 안나더군요… 그냥 먹고 놀고 자궁문 열린다는 운동 (짐볼운동, 걷기)을 간간히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1월 11일 수요일, 39주 0일차, 양수 파수 (조금 샘)

아침에 이불에 뭔가 노란 액체가 침대에 손가락 두마디 정도 넓이로 묻어있었습니다. 2~3일 전부터 이슬이 나왔기 때문에 양이 늘은건지 양수가 샌건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병원 가는 날이니 가보면 알겠지 싶어서 우선 저는 출근을 했습니다. 주중에 와이프 혼자 병원 가는건 처음이라 장모님이 같이 가주시기로 하셔서 별일이 있겠나 싶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12시 30분, 긴급 입원

점심식사 후 산책중에 전화가 오더군요. 와이프 번호였지만 목소리는 장모님이셨습니다. 아침의 액체는 양수였고, 양수가 샌 경우 그 양이 얼마되지 않더라도 감염 위험이 있어서 48시간 내로 출산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와이프는 맨손으로 왔다가 무방비 상태로 입원하게 되었고 먹고싶었던 음식 대신 수액을 맞게 되었습니다. 보호자는 지정 1인만 입실 가능하기 때문에 장모님은 귀가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노트북을 챙겨 퇴근을 했습니다. 집에 들러 와이프가 미리 싸놓은 출산가방과 더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 유도분만 시작 (촉진제 투여)

제가 도착하고나서야 분만 촉진제를 투여했습니다. 드물지만 쇼크가 올 수도 있어서 보호자 없이는 투여를 못한다고 하네요. 산모는 갑작스러운 입원에 놀랐다곤 하지만 편안해 보였습니다. 촉진제는 우선 오후 6시까지 투여하고 별 반응이 없으면 중단하고 다음날 아침에 재개한다고 하네요. 다음날까지도 진전이 없으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저희는 자연분만을 원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양수는 조금씩 계속 새고 중간중간 내진도 했지만 큰 진전 없이 6시가 되었고 촉진제는 투여 중단했습니다.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이날 밤은 응급상황에 대비해 분만실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0시 이후는 다시 금식이라 저녁식사 후 간단한 간식 (초코우유, 에그타르트 조금)도 미리 먹어두었습니다.

 

밤부터 새벽까지, 진전 없음

촉진제의 효과가 늦게라도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특별한 반응은 없었습니다. 낮부터 태동 검사 기계 (태아 심박수, 자궁수축 정도 체크)를 배에 계속 붙이고 있고 압박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와이프는 아주 불편한 상태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와이프는 억지로라도 잠을 자려 했고 저는 잠이 안와서 자다 깨다 산모 상태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 하며 밤을 보냈습니다.

 

1월 12일 목요일, 39주차 1일 새벽 6시 반, 유도분만 재개 (촉진제 투여 재개)

다시 관장을 하고 7시쯤부터 촉진제를 다시 투여했던 것 같습니다. 밤잠을 설치고나니 아침잠이 몰려와 오전에는 산모도 저도 비몽사몽했습니다. 촉진제 투여 후 산모와 저는 부족한 잠을 보충했습니다.

 

오전 9시, 진통 시작 (양수 터뜨림, 자궁 2cm)

주치의 선생님이 진료를 오셔서 아직도 큰 진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양수를 아예 터뜨려 주셨습니다. 양수가 빠르게 빠지면서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진통 강도와 빈도가 서서히 올라가고 10시부터 11시 사이에는 견딜 수 없는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서 무통을 요청했습니다. 내진 결과 아직 2cm정도로 원래는 무통을 투여할 때는 아니지만 산모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우선 무통을 투여하기로 했습니다. 마취과 선생님이 오셔서 무통주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산모가 고통스러워하고 있기에 보험약관 읽듯이 속사포 랩으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고 보호자 서명을 받았습니다. 산모가 새우등 자세로 주사바늘을 꽂는 동안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전 11시, 무통주사 투여 (feat. 무통천국)

산모는 무통천국에 입성했습니다. 세상 인자한 표정으로 밖에서 대기하다 들어온 저를 맞이하고 무통주사의 어마어마한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잠에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나가서 식사를 하고 집에 들러 샤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주문해놓고 이렇게 여유롭게 밥먹고 집에 들러 씻고 들어가는 동안 애가 나와있지 않을까 하는 영화에서 나올법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후 12시 반, 분만실로 돌아가보니 산모는 잘 자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평생 욕먹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오후 2시, 자연분만 성공 예감 (자궁 3cm)

3cm에 도달했습니다. 비로소 자연분만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밤 늦게는 출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계속 진전이 없어서 수술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안도와 기대감에 벅차올랐습니다. 하지만 딱히 할건 없어서 눈을좀 붙이거나 아이패드로 예능을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 4시 반, 급전개 (자궁 8cm)

으레 한두시간마다 내진을 하러 오셨기에 별 생각없이 자리를 피해 소리만 듣고 있었습니다. 근데 왠걸 간호과장님이 8cm가 열려 아이 머리가 골반에 걸려있다고… 간호사들이 바쁘게 드나들기 시작했고 중간중간 수축이 올때마다 산모에게 힘을 주게 했습니다. 와이프도 처음엔 타이밍을 잘 못잡다가 어느 순간부터 감을 잡은듯 했습니다. 힘을 못줘서 무통 투여를 중단하는 불상사를 막고자 초집중 했던 것 같습니다.

 

오후 5시 반, 분만 성공

이런저런 기계와 기구들이 분만실로 들어왔습니다. 산모가 누워있던 침대도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해서 산모를 높이 받들고 있었습니다. 마치 컬트 영화에 나오는 중세시대의 미신적인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위생모와 위생복을 입고 분만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님들이 출산 준비를 마치자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고 간호사님 여러분이 달려들어 배를 강력하게 압박하며 아이를 밀어냈습니다. 수차례 펌핑 (분만 과정 중 one of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후 어찌어찌 하니 금방 아기가 선생님 손 위에 엎어진 자세로 나왔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습니다. 진짜로 몸에서 아기가 나오다니… 탯줄을 자르고 아기 기도에 남아있는 양수를 제거하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크게 울지는 않더군요. 환경 변화가 극심할텐데 성격이 무던한가 싶었습니다. 아기를 엄마 품에 안겨주고 이름을 부르자 아기가 엄마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뱃속에서 수없이 들어온 목소리를 기억하는걸까?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오후 6시 반, 무통 후폭풍, 첫 면회

뒷정리를 마치고 무통주사 투여를 멈추자 산모는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을 심하게 느꼈습니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하반신이 마비되기 때문에 첫 면회는 저만 다녀왔습니다. 아기는 조산이 아니어도 출산 직후에는 인큐베이터에 가있더군요. 잠시 유리창 밖으로 아이를 보고 와이프에게 돌아갔습니다. 곧 병실로 이동하고 이제 회복을 위한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정리

양수가 샌 것으로 의심되거나 잘 모르겠으면 병원에 빨리 가보시는게 좋은 것 같습니다. 양수는 이슬보다 색이 연하고 점성도 약한 것 같더군요. 같이 섞이는 경우 구별이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일단 양수가 새면 48이내에 자연분만이든 수술이든 반드시 출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절대적인 건 아니고 태아 상태를 봐가며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듯 합니다.
양수가 줄어들면 진통이 시작되기 마련이지만 특히 초산인 경우 3cm까지는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유도분만을 하더라도 촉진제 효과가 즉시 오는 것은 아니며 저처럼 오후 늦게 (3시 경) 투여를 시작하면 오후 6시까지 투여할 수 있는 양이 적기 때문에 다음날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병원마다 다른건지 모르겠습니다.)
유도분만도 진행이 더디다면 주치의 판단 하에 양수를 인위적으로 터뜨리기도 합니다. 이후에는 확실히 진행이 빨라진 것같습니다만 몇센치까지 몇시간 걸렸다는 점을 일반화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증이 극심한 경우에는 충분히 열리지 않았더라도 무통을 요구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다만, 의료진의 판단이나 병원 방침에 따라 투여 여부나 시점이 결정될 것 같습니다.

무통 맞고있을 때 낳으면 안아픈것 같더군요. 실제로 아이가 나오는 동안 저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았지만 와이프는 기진맥진할 뿐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통 상태에서 자궁 수축을 느끼고 맞춰서 힘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며

임신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출산까지 믿어지지 않는 일들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특히 수개월간 다이나믹한 몸의 변화와 고통을 견뎌낸 와이프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그리고 뱃속에서부터 한번도 속썩이지 않은 착한 아들, 엄마가 무통빨 받고 있을 때 나와줘서 너무 기특하네요. 집에서 조리원 캠으로 아기를 보고 있는데 너무 예쁘고 매순간 새로워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다음엔 둘째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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